학생시절 베네딕도 왜관 수도원에서 청소년 피정을 한 적이 두 번 있었는데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한번,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한번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피정을 가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 본당 자매님의 초대로 가르멜 수도회 피정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어머니 장례를 치루고 슬픈 마음 달래지 못하여 방황하던 시기에 피정 체험은 '생명의 물, 오아시스' 같았습니다. 본당에서 새벽미사를 마치고 자매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마산 피정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가르멜 재속회 피정(Religious Retreat)의 집
학생시절 베네딕도 수도원 피정 경험을 옛추억으로 하더라도 가르멜 수도회 피정의 집 건물에 처음으로 들어섰을 때 너무 추워 몹시 떨었던 기억이 오래갈 듯 합니다. 1월 15일 한겨울인데다 이른 아침이어서 더 추었던거 같습니다. 충분히 따듯한 옷이나 무릎담요 같은 것을 준비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면서 피정을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겨울 추위 하나를 극복하지 못해 피정을 힘들어 한다면, 먼 옛날 광야에서 고행생활을 했던 수도사님들께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르멜 재속회 자매님들의 사랑
가르멜회 피정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날 재속회 피정의 집에서 처음 만난 한 형제님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 준 자매님들을 생각할 때마다 늘 감사한 마음이 되새겨집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식으로 우리 인간이 서로 돕고 힘들 때 위로하며 살아가게 하시나 봅니다.
피정의 집에서 만난 한 형제님
그날 처음 만난 한 형제님의 사연이 무척 가슴 아프게 합니다. 때때로 그 형제님이 '모친을 잃은 아픔을 극복하고 잘살아가고 있을까?' 생각나곤 합니다. 아마도 동병상련같은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독신으로 모친과 단 둘이 살았던 그 형제님은 어머니를 여의고 일 년이 자났음에도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모친을 잃었으니 생업에 대한 의지도 없어 보였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에 그 형제님의 어머니가 코로나에 걸렸고 병원으로 급히 모시고 갔으나 병상이 없어 옆 도시의 병원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좌절과 어려움을 겪은듯 합니다. 아픈 모친을 병상으로 모시지 못하고 이리 저리 병원을 찾아 헤매어야 했던 그 순간의 고통이 전해오는 듯 했습니다.
병상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안에 그분의 모친은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 안타까운 사연을 듣는 내내 그 상처가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년 후에도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겠구나' 생각하니 또 다시 길 잃은 양이 되어 슬퍼합니다.
피정의 집에서 만난 세 자매님
가르멜 재속회 피정 체험을 상기하면, 세 자매님들이 떠 오릅니다. 꾀꼬리보다도 더 고운 목소리로 기도하는 한 자매님이 생각납니다. 기도문을 읊는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무슨 천상의 소리를 듣는 듯 했습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분이 요즘 사람같지 않게 신앙생활을 참 열심히 하는구나' 했더니, 나이가 많다고 합니다. 나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젊고 예쁜 모습에 깜짝 놀랍니다. 매일 저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기도하니 주님의 사랑 받는 종이 분명합니다. 꾀꼬리 자매님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기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아주 온화한 인상의 중후한 분위기를 주는 큰 자매님은 신부님과 여러 수녀님을 배출한 집안에서 오신 분입니다. 물질세상이 아닌 주님의 나라에서는 명문가인 셈입니다. 이렇게 대단한 가문에서 오신 분을 만나볼 수 있었던 은혜를 받는구나 생각하니 감사하였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당신의 아들과 딸이 신부와 수녀님이 되기를 그렇게 원하셨는데도 단 한명도 주님의 간택을 받지 못했는데 주님의 큰 은총을 입은 큰 자매님의 집안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무척 아름다운 본당 자매님이 생각납니다. 늘 화장을 곱게 하여 새벽미사에 오는데 '저 분은 새벽 몇시에 일어나길래 화정할 시간이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피정의 집에 제일 먼저 도착해 온갖 굳은 일 도맡아 처리하던 모습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주님! 처음 참석한 가르멜 수도회 피정에서 특별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은혜에 감사합니다.
피정(避靜, Religious Retreat)
피정은 무엇이고 왜 피정을 할까요? 피정은 성당·수도원 등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행하는 일정기간 동안의 수련생활을 지칭하는 용어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성직자·수도자·신자들이 자신들의 영신생활에 필요한 결정이나 새로운 쇄신을 위하여 어느 기간 동안 일상적인 생활의 모든 업무에서 벗어나, 묵상·성찰·기도 등 종교적 수련을 할 수 있는 조용한 곳으로 물러남을 뜻합니다. 피정의 장소로는 성당이나 수도원 또는 피정의 집 등이 이용됩니다(지식백과).
가르멜 재속회 피정의 집 가는 길
피정의 집이 산 중턱에 위치하니 대중교통과 택시를 이용하여 방문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하철 안지랑역 2번출구에서 560m 정도를 걸어서 피정의 집으로 이동합니다. 이른 아침 피정의 집 들어갈때는 본당 자매님의 차량 도움을 받았고 피정 마치고 저녁에 돌아올때는 지하철역까지 걸어 내려갔습니다. 다른 회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가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지하철까지 당도할 수 있었습니다.
주소: 대구광역시 남구 안지랑로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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