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멜 수도원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며

2024년 1월 14일(일) 새벽 미사를 마치고 가르멜 수도원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중고등학교때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피정을 해 본 경험이 있었기에 수도원을 방문하는 것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이 날은 한 수사님의 종신서원식이 있는 날이어서 전국적으로 많은 수사님들과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습니다. 종신서원식이 시작되기 전 수도원을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었는데 가르멜회 두 자매님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자고 권하길래 이분들과 합류하였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바치는 동안 눈물이 흐릅니다.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라틴어: Via Crucis)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시간(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는 기도이며 '고통의 길'이라고도 합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사순시기 동안 매주 금요일과 성금요일에 행합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대사를 자신을 위해서 받을 수도 있고, 특정한 영혼에게 돌려줄 수도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14처 

십자가의 길을 바치는 가톨릭 신자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십자가의 길 14처'가 설치되어 있는 성당이나 경당 또는 성지에 조성된 옥외 장소에서 바쳐야만 합니다. 이 기도를 할 때는 한 처에서 다음 처로 이동하며 바쳐야 합니다. 단, 공동으로 바치는 경우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이동할 수 없는 경우에는 기도를 주관하는 사람만 이동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 자리에 서 있어도 됩니다. 14처 전체를 순서에 따라 중단하지 않고 계속 바쳐야 하며 만약 전체를 바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한대사(부분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총 14처로, 각 처에서 바치는 기도문이 정해져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짐.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 
제7처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 
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

 

축복된 십자가를 사용 

14처가 설치된 장소에서 기도를 바칠 수 없는 사람들, 즉 병자, 여행자, 죄수 등은 특별히 축복된 십자가를 사용하여 기도함으로써 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듣지 못하거나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십자가의 길을 바치면 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전대사

무엇보다 기도를 바칠 당시 은총 상태에 있어야 하며, 죄가 전혀 없는 상태여야 합니다. 만약 소죄라도 있으면 전대사 대신 한대사를 받습니다. 이와 같은 조건에 따라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대사를 자신을 위해서 받을 수도 있고, 특정한 영혼에게 돌려줄 수도 있습니다.

 

프란치스코회에 의해 체계화 

14세기 프란치스코회에 의해 기도문이 체계화되었습니다. 이 기도의 목적은 당시 이슬람교 세력의 예루살렘 정복 때문에 성지 순례 여행에 차질을 빚게 되자 유럽에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과정에서 주요한 장면을 떠올리며 기도로서 영적인 순례 여행을 도우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신심은 프란치스코회의 전교활동에 의해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하였습니다. 16세기까지는 각 처의 숫자가 고정되지 않았으나, 클레멘스 12세(1730-1740년)에 의해 현재의 순번으로 명시화되었습니다.

 

가르멜 수도원에서 바친 '십자가의 길'

가르멜 수도원에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수도원의 뒷산 아름다운 숲 길을 따라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숲속을 산책하듯이 걸어서 기도하니 기도에 몰입이 되고 산들바람이 부니 성모마리아 어머니가 따듯하게 느껴집니다.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

Ecce homo"이 사람을 보라"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라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

나와 함께 다시 일어나 걸어가자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

아들 수난 보는 성모 밀려오는 비통함에 하염없이 우시네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짐.

주님 저를 작은 도구로 사용하여 주십시오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

저의 마음 속에도 주님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7처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

저희에게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를 위하여 울어라

 

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

일어나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라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

저희에게 거룩한 옷을 입혀 주시려고 당신은 벌거벗으시는 겁니까?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

주님 당신께서는 당신을 죽인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를 용서하십니다.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

"다 이루어졌다"

 

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

이 길의 목적지는 고통과 죽음이 아니라 생명과 부활이다.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

"나는 사흘 안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가르멜 수도원 십자가의 길 마치고

'십자가의 길 14처' 기도를 마치고 돌아서면 눈 앞이 탁 트이며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집니다. 정말 평화로운 오후입니다. 아름다운 바다 경치를 바라보며 자매님들과 담소도 나누고 수도원으로 돌아와 종신서원식에 참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