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후안 차물라 성당 문을 들어서는 순간, 공기는 코팔(copal) 향과 수천 개 촛불이 내뿜는 열기와 연기로 저를 에워싸는 듯했고, 상상도 못했던 장면에 숨이 멎는 것 같았어요. 제가 익숙하게 보아온 가톨릭 성당과 달리 의자는 없고, 바닥에는 솔잎(소나무 잎)이 두텁게 깔려 있었어요. 촛칠 마야 공동체 사람들은 바닥에 앉아 기도하듯 낮게 웅얼거렸고, 자욱한 촛불 연기 속에서 벽을 따라 유리 진열장 안에 성인상과 성모상이 줄지어 서 있었어요. 이들은 무엇을 그토록 간절히 빌고 있는 것이었을까요?
차물라 성당의 주인, 세례자 요한
산 후안 차물라 성당은 이름 그대로 세례자 요한(San Juan Bautista)께 봉헌된 성당입니다. 가브리엘라는 차물라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세례자 요한을 더 특별하게 공경한다고 설명해 주었어요. 그래서 이 공간의 중심 서사도 자연스럽게 세례자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모인다고 해요.
세례자 요한은 물과 회개, 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문턱’에 서 있는 성인입니다. 오래된 토착 전통과 가톨릭 신심이 한 공간에서 겹쳐지는 차물라에서는, 그가 더더욱 ‘경계의 수호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성당 안에서 저는 “이곳 사람들에게 세례자 요한은 단지 성경 속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 성인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리 진열장 속 성인들, 그리고 ‘거울’의 의미
차물라 성당의 성인상들은 대개 벽을 따라 나무 진열장(유리문) 안에 모셔져 있습니다. 그 주변엔 거울 장식이 함께 붙어 있어요. 거울은 장식이면서 동시에 ‘막아내는 것’입니다. 어떤 설명은 거울이 악을 물리치기 위한 장치라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진열장 앞에 앉아 촛불을 세우고, 기도를 ‘낭독’하기보다 ‘의식처럼 수행’하는 장면은 성당을 하나의 거대한 제단처럼 보이게 합니다.
어떤 성인 앞에는 꽃과 리본, 헌물이 풍성하게 쌓여 있었지만, 어떤 성인은 조용한 뒷자리로 물러나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오방색을 떠올리게 하는 선명한 색감의 리본을 두른 성인상들은 제가 알고 있던 성상과 결이 달라, 순간적으로 한국의 무속 의례에서 보던 ‘장식된 신상’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어요.
물론 같다는 뜻은 아니에요. 이곳에서는 촛칠 마야의 토착 전통과 가톨릭 신심이 결합된 방식으로 기도가 이어지고, 그 결합이 시각적으로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듯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성인상들은 단순한 장식이나 조각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의 사정과 소원을 가까이에서 받아 안는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꽃이 쌓인 성인과 비어 있는 성인 사이의 간격이 이곳 신앙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꽃을 받는 성인들, 응답의 자리
차물라 성당의 성인상들은 벽을 따라 유리 진열장 안에 모셔져 있습니다. 그 앞에서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촛불을 세우며, 자신의 사정을 담아 기도합니다. 너무도 낯선 장면이지만,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분명 경건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성인들을 향한 신심은 아주 현실적인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사람들이 “기도를 잘 들어준다”고 느끼는 성인 앞에는 촛불이 더 많이 쌓이고, 꽃과 리본이 더해지며, 헌물도 늘어납니다. 말하자면 성인은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 매일의 사정 속에서 ‘기도의 응답’으로 기억되는 존재처럼 보였습니다.
밀려난 성인들, ‘벌 받는 성인’ 이야기
가브리엘라는 ‘벌 받는 성인들(santos castigados)’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전해지는 말은 이렇습니다. 기도에 응답한다고 여겨지는 성인은 더 좋은 자리로 옮겨지고 장식도 풍성해지지만, 반대로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느껴지면 그 성인은 점점 뒤로 밀려나거나 장식이 줄어들며 ‘castigado(벌을 받는/훈계를 받는)’ 성인처럼 취급된다는 것이었어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잠시 당황했습니다. 가톨릭 신앙이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를 말한다면, 차물라 성당에서 만난 신심은 마치 관계처럼 ‘검증’되고 ‘평가’되는 듯 보였거든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방식이 너무 인간적이어서, 그래서 더 날것의 진실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차물라의 성인들은 위로만 전하는 존재라기보다, 마을 사람들의 삶과 약속을 함께 떠받치는 존재에 더 가까워 보였어요.
성 세바스티아노와 성 베드로, 마을의 또 다른 기둥
차물라의 전통과 종교 행사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성 세바스티아노(San Sebastián)와 성 베드로(San Pedro)가 있습니다. 이 이름들은 차물라 공동체가 여러 성인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종교적 리듬을 이어 왔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도 해요.
여행자에게는 그저 “성당 안에 있는 성인 목록”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순례자의 마음에서는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청하는가는, 결국 내가 지금 삶에서 무엇을 가장 절실하게 붙잡고 있는가와 이어지니까요. 그래서 저는 성인의 이름을 외우기보다, 그 앞에서 촛불이 어떤 속도로 타고 있었는지, 어떤 표정의 침묵이 흘렀는지를 더 오래 기억하게 됩니다.
성 세바스티아노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예전 성 세바스티아노 교회가 불타거나 무너진 뒤, 그곳에 있던 성인상들이 차물라의 주성당으로 옮겨졌다는 것. 그리고 “교회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벌을 받아 벽을 향하게 놓였다는 전설도 덧붙여지곤 해요.
가톨릭 세계에서 성 베드로는 ‘열쇠’의 상징이죠. 하지만 차물라 성당에서 성인을 만날 때 중요한 건, 상징보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촛불의 수’와 ‘기도가 놓이는 자리’입니다.
문을 여는 열쇠는 성인의 손에만 있는 게 아니라, 기도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사람의 시간에도 함께 있다고요.
성모 마리아, 한 분이 아니라 ‘여러 모습’으로 곁에 있는 존재
가브리엘라는 성인상들과 함께 “virgins(성모상들)”이라는 표현이 자주 언급된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중 새로 모셔진 성모상에 대해서는 ‘아직 배워가는(learning) 성모상’이라고 표현했어요. 아마 이곳에서 성인들이 ‘큰/작은’, 혹은 ‘오래된/새로운’ 위상으로 구분되는 방식과 닿아 있는 표현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성모 마리아도 한 분으로 단정되기보다는, 공동체의 삶 가까이에 여러 모습으로 놓여 있는 존재처럼 묘사되나 봅니다.
제가 보아오던 성모상과 너무 다른 모습에 그저 놀랐지만, 이상하게도 이 공간에서 성모는 ‘조용한 중심’처럼 느껴졌습니다. 촛불의 바다와 향 연기 속에서도 소란스럽지 않고, 다만 사람들의 사정 가까이에 머무는 느낌이었어요. 누군가의 기도가 꺾이지 않도록, 아주 낮은 곳에서 받쳐 주는 어머니처럼요.
마무리
꽃이 모이는 성인, 촛불이 쌓이는 성인, 그리고 조용히 뒤로 밀려나는 성인들. 이곳에서 신앙은 머리로 정리되는 교리가 아니라, 촛불의 열과 연기, 그리고 기도의 무게로 몸에 새겨지는 방식으로 다가왔어요.
다음에 다시 이 성당에 들어선다면, 저는 성인의 이름을 더 정확히 외우기보다 그날의 촛불이 어느 성인 앞에서 가장 오래 흔들렸는지를 더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성당 내부는 촬영이 강하게 금지되어 있으니, 눈으로만 담아오세요.)
별이 된 어머니를 향한 순례길에서 – 소공녀의 별
On a pilgrimage path towards my mother, now a star – Little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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