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지순례 삼만리 여정/교회_Church

브뤼헤 성모교회와 부르고뉴 가문의 무덤

by 소공녀의 별 2026. 3. 9.

브뤼헤 성모교회를 둘러보면서, 이곳이 단순히 아름다운 고딕 성당만은 아니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어요. 미켈란젤로의 성모자상으로도 유명한 이 성당 안에는 유난히 눈길을 끄는 무덤 두 기가 자리하고 있었어요. 그 앞에는 관람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토록 성스러운 성당 한가운데에 권세 있는 가문의 화려한 무덤이 놓일 수 있었을까요?

 

브뤼헤 성모교회와 부르고뉴 가문의 무덤

브뤼헤 성모교회는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거룩한 장소인데, 그 한가운데에 한눈에도 권세와 부를 드러내는 듯한 무덤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어요. 게다가 이 두 무덤이 성모교회의 중요한 볼거리 가운데 하나라고 하니, 가톨릭 신앙이 혹시 부유한 이들에게 더 가까운 것이었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또 왜 이곳에 잠들게 되었는지를 하나씩 알아가면서, 브뤼헤 성모교회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도시의 역사와 신앙이 함께 포개어진 공간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럽을 움직였던 부르고뉴 가문

이곳에 잠든 이는 마리 드 부르고뉴와 그녀의 아버지 샤를르 대담공입니다. 부르고뉴 가문은 한때 유럽의 정치와 문화를 움직이던 강력한 가문이었고, 브뤼헤 역시 그들의 시대를 지나며 번영과 변화를 함께 겪은 도시였어요. 그래서 이 무덤은 단지 한 가문의 영광을 보여주는 장식이라기보다, 한 시대의 기억이 성당 안에 조용히 남겨진 흔적처럼 느껴졌어요.

 

스물다섯에 생을 마친 마리 드 부르고뉴

마리 드 부르고뉴는 1482년 브뤼헤에서 승마 중 낙마 사고를 당해, 스물다섯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뜻에 따라 브뤼헤 성모교회에 묻혔고, 남편 막시밀리안 1세는 그녀를 위해 장엄한 무덤을 마련했습니다. 무덤 위에는 왕관을 쓴 마리가 두 손을 모은 채 조용히 누워 있고, 머리는 베개에 기대어 있습니다. 발치에 놓인 두 마리 개는 충절과 신의를 상징한다고 하니, 화려한 조각 안에도 한 사람의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 이후의 기억이 함께 새겨져 있는 듯했습니다.

 

 

브뤼헤에 돌아온 샤를르 대담공

그 옆의 샤를르 대담공 무덤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는 1477년 낭시 전투에서 죽었지만, 지금 성모교회에 보이는 무덤은 훨씬 뒤인 16세기 중반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의 무덤이 중세 말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면, 샤를르의 무덤에는 초기 르네상스 양식의 흔적도 함께 보입니다. 같은 가문, 같은 성당, 그러나 서로 다른 시대의 미감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셈입니다.

 

마무리

브뤼헤 성모교회는 미켈란젤로의 성모자상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성당이지만, 그 안에 잠든 부르고뉴 가문의 무덤은 이곳을 조금 더 복합적이고 깊은 장소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름다움과 권세, 죽음과 기도, 역사와 신앙이 한 공간 안에 함께 머무는 성당. 브뤼헤 성모교회는 제게 그런 곳이었습니다.

 

 

별이 된 어머니를 향한 순례길에서 – 소공녀의 별

 

 

#브뤼헤성지 #가톨릭신앙 #유럽여행 #성지순례 #성모교회 #미켈란젤로 #성모자상 #브뤼헤인기방문지 #르네상스양식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