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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가톨릭 신앙

어머니의 '밀레의 만종(L'Angelus)'과 삼종기도

by 소공녀의 별 2024. 7. 14.

오랜 세월 동안 어머니의 침대 바로 옆 벽면에는 ‘밀레의 만종’ 그림이 걸려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신문 그림이 붙어 있었는데 당시 조선일보 문화면에 크게 기사화 되었던 그림을 오려서 침대 옆 벽에 붙여 놓은 것이었습니다. 이후에 그 신문 그림을 액자에 넣으신거 같습니다. 모사본을 살 수도 있었는데 왜 굳이 그 신문 그림을 고집하셨을까요?

 

 

어머니의 밀레의 만종(L'Angelus)

이제와서 어머니가 얼마나 그 그림을 좋아하셨는지, 왜 그렇게 좋아하셨는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어머니는 벽에 붙어있던 그 신문그림을 가르키며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고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하시곤 했습니다. 그때는 어머니가 왜 그렇게 신문 그림에 감명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만종이라는 단어가 종(bell)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는 밀레의 만종 그림에서 삼종기도의 의미를 읽어내셨을 것입니다. '하루종일 땀 흘리며 일하느라 고단할터인데 두 부부의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도 평화로워 보인다'고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밀레의 만종(A painting by Millet, which is called L'Angelus)

만종은 한자로 '晩鐘'이어서 저녁종으로 번역한 책도 있으며 성당이나 절에서 저녁 무렵에 치는 타종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종은 저녁에 종소리를 들으며 바치는 기도라는 의미로 '만종'(晩 : 저물 만)이라 번역한 듯 합니다.

밀레의 만종(L'Angelus)

 

밀레의 만종과 삼종기도 'L'Angélus'

최근에 밀레의 만종과 가톨릭 기도문인 삼종기도(Angelus)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밀레의 만종의 원제목이 'L'Angélus'이고 이는 정확하게 ‘삼종기도’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종의 원제목 'L'Angélus'

가톨릭에서 하루 3번 일과를 잠시 멈추고 기도를 하는 일과가 있었습니다. 삼종기도의 3이라는 숫자는 하루 세 번이 아닌 3번 종 치고 멈추었다가 3번 다시 치는 식으로 계속되는 타종을 뜻합니다. 저녁 삼종기도는 6시쯤 바칩니다. 밀레의 만종은 해가 저무는 시간 때의 기도 모습입니다.

밀레의 만종(L'Angelus)

 

밀레가 만종을 그린 배경

밀레가 이 그림을 그린 배경이 언급됩니다.

"'만종'은 내가 옛날의 일을 떠올리면서 그린 그림이라네. 옛날에 우리가 밭에서 일할 때, 저녁종 울리는 소리가 들리면, 어쩌면 그렇게 우리 할머니는 한번도 잊지 않고 꼬박꼬박 우리 일손을 멈추게 하고는 삼종기도를 울리게 하셨는지 모르겠어. 그럼 우리는 모자를 손에 꼭 쥐고서 아주 경건하게 고인이 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곤 했지."(<밀레>(창해) 중에서)

 

삼종기도 기도문 내용 중에, 정확히는 이 기도문 중의 성모송 가운데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위 글 마지막 문장이 바로 그것을 뜻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