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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삼만리 여정/바실리카_Basilica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과 사크로 콘벤토.

by 소공녀의 별 2026. 3. 31.

이번 아시시 성지순례는 제게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2026년은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이 되는 해였고, 바로 그해 사순 시기인 2월 22일부터 3월 22일까지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하부 성전에서는 성인의 유해가 800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되어 신자들의 공경을 받는 특별한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여행을 떠나기 두 달쯤 전에 성 프란치스코 유해 공경 예약을 미리 해 두었는데, 뒤늦게 알고 보니 이미 그 역사적인 순례길 안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유해가 800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되어 공경되던 그 자리에 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제게 은총이자 기적처럼 느껴졌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상부 성전 내부 — 프레스코와 장미창이 어우러진 공간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 유해 공경

사실 저는 대성전이나 바실리카를 찾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성인의 무덤이 모셔진 지하 경당을 찾아가곤 합니다. 이번에도 그런 습관처럼 예약했던 일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단순한 여행 습관이 아니라 성 프란치스코의 800주기라는 특별한 시간 속으로 저를 이끈 작은 부르심처럼 느껴졌습니다. 공경 기간 동안 유해는 원래 무덤이 있는 크립타에서 옮겨져 하부 성전의 교황 제대 아래쪽에 모셔졌고, 모든 미사는 상부 성전에서 거행되었습니다. 미사에 참례하려면 사전 예약이 필수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해, 저는 미사가 시작되기 전 상부 성전을 나와야 했습니다. 그 순간의 아쉬움은 작지 않았지만, 언젠가 다시 이곳에 와 미사에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남겨 주었습니다.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하부 성전 입구 앞의 순례자들
성 프란치스코 유해 공경을 위해 하부 성전 입구 앞에 길게 늘어선 순례자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Basilica of Saint Francis of Assisi)

아시시(Assisi)가 가톨릭 성지로 널리 알려진 이유는, 도시 전체가 성 프란치스코의 삶과 프란치스칸 영성의 무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과 사크로 콘벤토는 아시시 순례의 중심이자, 성 프란치스코와 프란치스칸 전통을 가장 깊이 만날 수 있는 핵심 공간입니다.

아시시에 들어서자, 언덕 위에 자리한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과 사크로 콘벤토, 곧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 명소라기보다,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시대를 바꾸고 하나의 영성으로 살아 남았는지를 보여 주는 증언의 자리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앞, 순례자들의 긴 행렬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의 정면과 장미창

지옥의 언덕에서 낙원의 언덕으로

성당과 수도원은 아시시 서쪽 경사면에 붙듯이 서 있고, 아래로는 계곡이 깊게 열립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이 언덕이 한때 ‘콜레 델 인페르노(지옥의 언덕)’라 불렸다고 합니다. 범죄자들이 처형되던 자리였던 그 땅이,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품고 ‘낙원의 언덕’으로 바뀌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시시라는 도시의 신학이 설명되는 듯했습니다.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의 야경

두 성전이 포개진 아시시의 중심

이 성전 복합체가 특별한 이유는, 두 개의 성전이 위아래로 포개진 독특한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에는 밝고 높게 치솟는 상부 성전이 있고, 아래에는 어둡고 깊이 가라앉은 하부 성전이 있습니다. 두 성전은 같은 신앙을 말하지만, 서로 다른 빛과 분위기로 그 신앙을 드러냅니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상부 성전 내부 — 프레스코와 장미창이 어우러진 공간

상부성전

상부 성전으로 올라가면 공기가 한층 밝아지고, 시선도 자연스레 위로 끌려갑니다. 이곳의 벽과 천장은 중세 이탈리아 성화의 정수를 보여 주는 듯했고, 특히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따라가는 프레스코 연작 앞에서는 한동안 눈길을 떼기 어려웠습니다. 전통적으로 조토의 이름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치마부에, 시모네 마르티니, 피에트로 로렌체티 같은 거장들의 흔적도 이 대성전 전체에 겹겹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아시시는 기도의 도시이면서 동시에 성화의 도시이기도 하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상부 성전 입구의 고딕 아치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상부 성전의 제대와 프레스코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상부 성전 내부 — 푸른 천장과 프레스코 연작

하부 성전과 지하 무덤 경당

반면 하부 성전은 낮고 두터운 아치 아래로 어둠이 천천히 스며드는 공간입니다. 유해 공경을 위해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순례자들의 긴 행렬이 이어졌지만, 그 안에는 깊은 침묵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쪽 계단을 따라 더 내려가면, 마침내 성 프란치스코의 무덤이 있는 지하 무덤 경당에 이르게 됩니다. 성인의 무덤은 1818년에 다시 확인되었고, 이후 순례자들이 가까이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공간이 정비되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하부 성전으로 향하던 길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하부 성전 입구의 아치 장식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하부 성전의 푸른 천장과 프레스코

사크로 콘벤토 (Sacred Convent)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과 이어진 사크로 콘벤토는 오늘날에도 콘벤투알 작은형제회와 깊이 연결된 수도원 공간입니다. 단지 성전 곁에 붙어 있는 부속 건물이 아니라, 이 복합체가 지금까지도 살아 있는 신앙의 자리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이곳은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과 기타 프란치스칸 유적”의 핵심 공간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도시가 지닌 의미는 종교적 상징성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유네스코가 설명하듯, 이곳에 남아 있는 중세 예술과 건축, 그리고 치마부에, 피에트로 로렌체티, 시모네 마르티니, 조토로 이어지는 작품들은 이탈리아와 유럽 미술사의 전개에 결정적인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사크로 콘벤토와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복합체 (재현 이미지)

성 프란치스코는 어떤 분이었을까?

성 프란치스코는 1181년 또는 1182년 무렵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어느 순간부터 삶의 방향을 바꾸어 가난과 겸손, 평화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후 그는 복음을 말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하려 했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며 프란치스칸 전통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모든 피조물을 하느님의 창조물로 바라보며 사랑한 성인으로 기억되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평화와 가난, 기쁨과 사랑의 성인으로 깊이 공경받고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성 프란치스코 — 주여, 저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https://stella-mum.tistory.com/178

 

성 프란치스코 — 주여, 저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모든 피조물을 형제자매라 부르며,꽃과 새와 별빛 속에서도 하느님의 숨결을 느꼈던 사람,성 프란치스코는 가난과 겸손, 평화의 삶을 통해복음을 가장 단순하고도 깊이 있게 살아낸 성인이었습

stella-mum.tistory.com

 

초 봉헌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상부 성전에는 실제 촛불 대신 전기초만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동전을 넣으면 작은 불빛이 켜지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도 그 앞에서 초를 봉헌하고 싶었지만, 지폐밖에 없어 잠시 난감해졌습니다.

마침 성전 안내를 맡고 계시던 수사님 가운데 한 분께 지폐를 동전으로 바꿀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여쭈었더니, 따로 동전을 교환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어쩔 줄 몰라 하자, 그 수사님은 조용히 자신이 갖고 있던 동전 하나를 건네주셨습니다.

그 동전 하나를 동전함에 넣자 작은 불빛이 켜졌고, 저는 그 앞에서 짧게 기도했습니다. 때로는 순례길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이 거대한 성당의 장엄함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친절과 조용한 기도의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스코 디 산 프란체스코 가는 길에서 마주한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순례여행 메모

  • 동선은 보통 상부 성전에서 시작해 하부 성전과 지하 무덤 경당으로 내려가면, 감정의 흐름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 프레스코를 바라보는 일 역시, 이곳에서는 단순한 작품 감상이 아니라 순례길의 연장처럼 느껴졌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을 나선 뒤, 저는 한동안 아래 광장에 서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 가진 것을 내려놓는 방식, 약한 이들과 함께 걷는 방식, 그 모든 것을 한 성전이 가르쳐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이곳을 순례의 중심으로 만드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의 상부 성전과 하부 성전에서는 모두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규정을 미처 알지 못한 채 초반에 몇 장을 찍었다가 곧 제지를 받았고, 결국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따라가는 아름다운 프레스코 연작 성화를 제대로 담아오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올리브 나무에 새긴 성 프란치스코

아시시에서는 올리브나무가 많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올리브나무를 깎아 만든 성 프란치스코 수제 목각상이 순례 기념품으로 판매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모든 피조물을 형제자매처럼 바라보았던 성인의 모습이, 이 지역의 나무결 안에 다시 새겨져 있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별이 된 어머니를 향한 순례길에서 – 소공녀의 별
On a pilgrimage path towards my mother, now a star – Little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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