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세상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상의 크기는 반비례하듯 줄어드는 것 같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가는 초연결(hyperconnectivity)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주 작아진 세상, 그리고 계속 더 작아지는 세상
사랑하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본 후, 장례를 치르고, 33일간 위령미사를, 이어 83일간 새벽미사를 드리며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제 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어머니를 위한 기도로 시작된 가톨릭 신앙생활은 제가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기적들과 의식의 확장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은 어디까지 작아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어디까지 연결되고 성장할 수 있을까요?
천주교 신앙의 모태 뿌리
어머니는 S성당에서 무려 62년간 신앙생활을 해오셨습니다. 그곳은 저와 형제들의 신앙의 모태였고, 유아세례, 첫영성체, 견진성사, 청년회와 성가대 활동까지 우리 가족의 신앙이 자라온 터전이었습니다. 객지생활로 한동안 멀어졌던 신앙이, 어머니의 떠남을 계기로 다시 제 안에 깃들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S성당은 낯설었지만, 반가운 얼굴들도 있었습니다. 청년시절 성가대를 함께 했던 단장님, 그리고 L씨가 여전히 성당에서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서 변하지 않은 신앙의 뿌리를 느꼈습니다.
작아지는 세상과 반비례하는 인간 의식의 성장과 진화
소공녀는 태어난 후 S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성장해가는 과정 동안 주일의 대부분을 성당에서 보냈기 때문에 S성당은 '제 2의 집' 혹은 '영적인 집'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토요일에는 어린이 교리반에서 성경을 배웠었고 일요일의 본당 미사는 절대로 빠져서는 안되는 엄격한 규율이었습니다.
소공녀가 가족과 함께 살았던 '육신의 집'과 '영혼의 집'인 육신이 '삶을 살아가는 집'과 '영성적 성장을 이끄는 성당'으로 정의되었다고 할까요?
의식의 초연결(Hyperconnectivity)과 진화
2024년 1월 14일, 가르멜 수도원의 종신서원식에 참석하고 다음날 피정까지 다녀온 후, 또 하나의 인연을 만났습니다. 길을 함께 걷게 된 자매님이 어머니와 저를 기억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 그녀의 아들이 제가 청년성가대에서 함께 활동했던 B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B는 성 베네딕도회의 수사가 되어 신앙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존경했던 초등학교 선생님이 B의 아버지였다는 사실까지 듣게 되니,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초연결된 이 작은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 얼마나 깊고 놀라운지를 체험하게 됩니다.
세상은 작아졌지만, 인간의 의식은 그만큼 성장하고 진화해가고 있습니다. 육신의 집이 있던 자리, 영혼의 집이던 성당,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깨어나는 신앙은 제게 큰 위로와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신앙과 삶은 제게 깊은 뿌리로 남아, 이 작아진 세상 속에서도 더 넓은 하느님의 세계로 나아가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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