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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삼만리 여정

성 와인프리드 성지와 우물 — 웨일스에서 1,300년 넘게 이어진 순례.

by 소공녀의 별 2026. 7. 8.

북웨일스에는 ‘웨일스의 루르드’라고 불리는 성녀 위니프리드 성지와 성스러운 우물이 있다. 그곳을 찾아가 우물 뒤편의 초 봉헌소에서 가족과 지인들을 위한 봉헌초 열 개에 차례로 불을 밝혔다.

초를 봉헌한 뒤 우물 위쪽에 자리한 경당으로 올라가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마치고 성지를 떠나기 전, 사진을 몇 장 더 남기고 싶어 다시 우물로 내려갔다. 그리고 우물 둘레를 천천히 돌며 다시 한번 기도했다.

그런데 문득 봉헌초를 바라보니 열 개 가운데 네 번째 초만 꺼져 있었다. 다른 초들은 모두 그대로 타오르고 있었는데, 왜 하필 네 번째 초만 꺼진 것일까.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묘하게 신기한 마음도 들었다. 

그 순간, 주님께서는 내가 누구를 위해 네 번째 초를 봉헌했는지 이미 알고 계신 듯했다.

성 와인프리드 성지와 우물 — 웨일즈에서 1,300년 넘게 이어진 순례

성 와인프리드 성지와 우물

북웨일스 플린트셔의 홀리웰에는 성녀 와인프리드 성지와 우물이 있다. 정식 명칭은 St Winefride’s Shrine and Well이다. 웨일스어로 성녀의 이름은 Gwenffrewi이며, 우물은 Ffynnon Wenffrewi라고 부른다.

이곳은 웨일스의 가톨릭 국가 성지이자, 영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순례가 이어진 장소 가운데 하나다.

성녀 와인프리드 우물 경당과 바깥쪽 수조. 우물에서 흘러나온 물이 이곳으로 이어지며, 순례자들은 정해진 시간과 안내에 따라 물에 들어가 기도할 수 있다.

 

성지 안내 기록에 따르면, 리처드 1세는 1189년 십자군 원정의 성공을 기원하며 이곳을 순례했다. 이후 리처드 2세와 헨리 4세, 헨리 5세, 에드워드 4세, 제임스 2세를 비롯한 여러 왕실 인물들도 성녀 와인프리드의 우물을 찾아 기도했다. 1828년에는 훗날 영국 여왕이 된 빅토리아 공주가 외삼촌인 레오폴드와 함께 이곳을 방문했다. 레오폴드는 이후 벨기에의 초대 국왕 레오폴드 1세가 되었다. 현재의 찰스 3세도 왕세자 시절인 2021년 이 성지를 찾았다.

성녀 와인프리드의 우물에서 맑은 샘물이 끊임없이 솟아오르고 있다. 1,300년 넘게 순례자들이 치유와 위로를 청하며 기도해 온 물이다.

성 와인프리드는 누구인가

성 와인프리드는 7세기 북웨일즈에서 살았다고 전해지는 성녀다.

전승에 따르면 와인프리드는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려 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남성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이후 성 베우노의 기도로 다시 살아났으며, 그녀가 쓰러진 자리에서 샘물이 솟아났다고 전해진다.

이 샘물이 오늘날 성 와인프리드 우물이다. 성녀는 이후 수도생활을 하며 신앙 안에서 살았고, 사후에는 순결과 치유를 상징하는 성인으로 공경받았다.

성녀 와인프리드 석상 앞에서. 머리의 관과 손에 든 종려나무 가지는 순교를, 목장은 훗날 수녀원장이 된 성녀의 삶을 상징한다.

1,300년 넘게 이어진 순례

성녀 와인프리드의 우물에는 약 1,300년 동안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져 왔다. 16세기 영국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신앙과 성인 공경이 억압받던 시기에도 이곳을 찾는 순례는 완전히 끊기지 않았다. 가톨릭 신자들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이 우물을 찾아와 기도하고 성녀 와인프리드의 전구를 청했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성녀 와인프리드 성지는 영국 가톨릭 신앙의 끈질긴 지속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로 평가된다. ‘성스러운 우물’을 뜻하는 홀리웰이라는 마을 이름도 이곳의 오랜 신앙 전통과 잘 어울려 유난히 마음에 와 닿았다.

성녀 와인프리드 성지 박물관에 전시된 13세기 참나무 궤. 통나무 속을 파내어 만든 것으로, 성녀의 성유물함을 보관했던 궤로 추정된다.

우물 위에 세워진 경당

현재의 석조 경당은 중세 말기에 성녀 와인프리드의 우물 위에 세워졌다. 건물 아래층에는 샘물이 솟아나는 공간과 별 모양의 수조가 있고, 위층에는 작은 경당이 자리한다. 석조 기둥과 정교한 부채꼴 천장 장식이 잘 남아 있어, 종교적 의미뿐 아니라 건축사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우물에서 솟아난 물은 바깥쪽 수조로 이어진다. 나는 이곳에서 기도를 드린 뒤 우물물을 받아 며칠 동안 조금씩 마셨다. 또한 성지에서 정한 시간과 안내에 따라 바깥 수조에 들어가 기도할 수도 있다.

성녀 와인프리드의 우물 바로 위를 덮은 후기 중세의 리브 볼트 천장. 중앙 펜던트 보스에는 성녀 와인프리드의 생애를 보여주는 여섯 장면이 새겨져 있으며, 천장 곳곳에는 다양한 문장과 인물, 식물 모양의 조각 보스가 남아 있다.
성녀 와인프리드의 우물 위층에 자리한 경당. 후기 중세의 석조 창과 목조 천장 아래 제단이 놓여 있으며, 지금도 순례자들이 기도하고 전례를 거행하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치유를 청하는 순례지

성녀 와인프리드의 우물은 오랫동안 치유를 청하는 장소로 알려져 왔다. 신체적 질병뿐 아니라 상실, 마음의 상처, 두려움과 고통을 안고 찾아오는 순례자도 많다.

가톨릭 신앙에서는 성지의 물 자체를 마법적인 치료제로 여기지 않는다. 순례자는 물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며 기도한다.

이곳은 때때로 ‘웨일스의 루르드’라고 불리지만, 프랑스 루르드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순례가 이어져 왔다.

이곳에서 기도를 드리고 우물물을 마신 뒤부터일까. 아버지를 잃은 고통스러운 기억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기억으로부터 내 마음을 지켜주는 얇은 보호막이 생긴 듯하다.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나를 무너뜨리던 아픔도 전보다 조금은 누그러진 것 같다.

이것이 이곳에서 받은 치유의 은총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하느님께서 내 슬픔을 알고 계시며, 내가 견딜 수 있도록 조용히 감싸주고 계신다는 느낌이 든다. 오랫동안 벌어져 있던 마음의 상처도 이제 막 조금씩 아물기 시작하는 것 같다.

게이트하우스 경당의 ‘웃는 아기 예수와 성모’ 성상 앞에서

성지에서 드린 기도와 초 봉헌

성지를 방문해 성녀 와인프리드의 우물과 경당을 둘러보고 조용히 기도할 수 있었다. 방문자센터와 전시 공간에서는 성녀의 생애와 오랜 순례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었으며, 성수와 기념품을 구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가족과 지인들을 위해 봉헌초 열 개를 마련해 우물 뒤편의 초 봉헌소에서 차례로 불을 밝혔다. 이후 떠나기 전 사진을 몇 장 더 찍으려고 다시 우물로 내려갔다가, 열 개 가운데 네 번째 초만 꺼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왜 그 초만 꺼졌는지는 여전히 궁금하지만, 떠나기 전에 다시 불을 밝힐 수 있어 마음이 놓였다.

주요 순례일이나 종교행사가 있는 날에는 미사와 공동기도, 행렬 등이 거행되기도 한다. 미사에 참례하려면 방문 전에 성지나 인근 성당의 일정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가족과 지인들을 위해 밝힌 열 개의 봉헌초.

방문 정보

명칭
St Winefride’s Shrine and Well

주소
Greenfield Street, Holywell, Flintshire, CH8 7PN, Wales

운영시간

  • 4월 1일~9월 30일: 매일 09:00~17:00
  • 10월 1일~3월 31일: 매일 10:00~16:00

폐장 30분 전부터 입장이 제한될 수 있다. 성탄절과 박싱데이는 휴관하며, 종교행사나 시설 사정에 따라 운영시간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교통
가장 가까운 주요 기차역은 Flint역으로, 성지에서 약 6.4km 떨어져 있다. 대중교통이 제한적일 수 있어 버스 시간과 택시 이용 가능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편이 좋다.

우물 경당 한쪽에 놓인 나무 십자가와 중세 석조 조각의 파편

북웨일즈에서 만난 가톨릭 성지

성녀 와인프리드 성지와 우물은 웨일스의 오랜 신앙 전통과 가톨릭 순례의 역사를 함께 느낄 수 있었던 곳이다. 화려한 대성당은 아니었지만, 오랜 세월 수많은 이들이 치유와 위로를 청하며 찾아온 장소라는 사실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별이 된 어머니를 향한 순례길에서
– 소공녀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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