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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삼만리 여정/교회_Church

마데이라 폰타 델가다 성당 — 바다 곁에서 만난 봉 제수스의 오래된 위로

by 소공녀의 별 2026. 5. 7.

일요일 주일미사가 끝나면, 우리는 성당 근처의 작은 레스토랑으로 향합니다.
아일랜드 출신의 시네이드(Sinéad)가 운영하는 곳입니다. 친한 신자들과 잠시 담소를 나누기 위해 들르는 곳이지요. 물론 따뜻한 커피와 소박한 다과도 함께합니다.

시네이드는 성당 신자들에게 커피를 무료로 내어주고, 수지는 매주 정성껏 케이크를 만들어 옵니다. 그렇게 주일미사 뒤의 짧은 시간은 우리에게 작은 친교의 시간이 됩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커피와 케이크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데비가 문득 상 비센트 지역에 있는 폰타 델가다(Ponta Delgada) 성당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곳의 천장화가 아름답고 유명하니 꼭 한번 가보라고 권해 준 것이지요.

그 말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저는 마데이라 북쪽을 향해 작은 순례를 떠났습니다.

마데이라 북쪽 해안 마을 폰타 델가다(Ponta Delgada)

폰타 델가다(Ponta Delgada)

마데이라 북쪽 해안길을 따라가다 보면, 산과 바다가 서로를 향해 깊이 기대고 있는 마을을 만나게 됩니다. 그곳이 폰타 델가다(Ponta Delgada)입니다. 이름은 아소르스의 도시와 같지만, 이곳은 마데이라 섬 북부 상비센트(São Vicente) 지방에 자리한 작은 해안 마을입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바닷가에 성당이 보였어요. Igreja do Senhor Bom Jesus, 곧 봉 제수스 성당이 서 있었습니다. 왜 바닷가 바로 앞에 성당을 세워졌을까요?

대성당이나 바실리카와 다르게 무척 소박해 보이는 이 성당은 오래된 신앙의 기억을 간직한 곳일것입니다.

봉 제수스 성당 (선하신 주 예수님께 봉헌된 성당)

봉 제수스 성당 (선하신 주 예수님께 봉헌된 성당)

폰타 델가다의 봉 제수스 신심은 마을의 초기 역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Senhor Bom Jesus 예배당은 1507년 이전에 Manuel Afonso de Sanha에 의해 세워졌고, 1550년에 폰타 델가다 본당이 만들어졌을 때 그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이전까지 이 지역 사람들은 상비센트 본당에 속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성당은 단순히 한 마을의 건물이 아니라, 폰타 델가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앙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가던 사람들, 산비탈과 계곡 사이에서 하루를 이어가던 사람들, 폭풍과 고립과 노동의 시간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에게 이곳은 기도할 수 있는 집이었을 것입니다.

폰타 델가다 봉 제수스 성당 내부 — 제대 위로 펼쳐진 천장화가 하늘과 바다, 창조의 풍경을 한눈에 보여주던 순간.
폰타 델가다 봉 제수스 성당 내부 — 중앙 제대 쪽에서 바라본 신랑과 천장화

 

중앙 제대에는 Senhor Bom Jesus 신심을 상징하는 십자가상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다만 전승 속 ‘실물 크기의 오래된 성상’과 1908년 화재에서 살아남은 잔존 성상은 제의실 쪽에 보관·전시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폰타 델가다 봉 제수스 성당의 내부의 방문객들
중앙 제대에 모셔진 Senhor Bom Jesus, 선하신 주 예수님 십자가상

폰타 델가다 성당 내부의 천장화

사실 제가 폰타 델가다 성당을 찾아간 가장 큰 이유는 성당 내부의 천장화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데비가 그 천장화가 아름답다고 이야기했을 때, 저도 꼭 한 번 직접 보고 싶어졌거든요.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제대 위로 하늘과 바다, 동물과 인물들이 펼쳐진 독특한 천장화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실제로 올려다본 천장화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단순한 장식이라기보다, 성당 천장 위에 펼쳐진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한참 동안 자리에 앉아 그 그림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하늘과 바다, 창조의 풍경이 제대 위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고, 그 순간 성당 전체가 하나의 기도처럼 느껴졌습니다.

폰타 델가다 성당 내부의 천장화

 

 

성당의 주보는 Senhor Bom Jesus, 곧 ‘선하신 주 예수’입니다. 상비센트 관광 자료에 따르면, 폰타 델가다의 첫 정착자로 알려진 Manuel Afonso de Sanha는 브라가 출신이었고, 브라가 지역의 강한 Bom Jesus 신심이 이 마을로 이어졌다고 설명됩니다. 

마데이라의 작은 해안 마을과 포르투갈 본토 브라가의 신심이, 한 사람의 이주와 정착을 통해 이곳에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신앙은 때때로 사람을 따라 이동합니다. 고향에서 품고 온 기도는 낯선 땅에서 다시 작은 제단이 되고, 그 제단은 시간이 지나 한 마을의 심장이 됩니다.

 

폰타 델가다 성당의 아름다움은 또 하나의 상처에서 옵니다.

1908년 7월 12일, 이 성당은 큰 화재를 겪었습니다. 오래된 기록들은 그 불이 성당을 거의 완전히 파괴했다고 전합니다. 16세기에 세워지고 1700년에 확장되었던 옛 성당은 큰 피해를 입었고, 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종교적·건축적 유산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불길 속에서도 Senhor Bom Jesus의 오래된 이미지,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상 일부가 살아남았다고 전해집니다. 상비센트 관광 자료도 1908년 화재 이후 그리스도 십자가상이 살아남은 중요한 유물 중 하나였고, 오늘날에도 많은 순례자들이 그 이미지를 보기 위해 폰타 델가다를 찾는다고 설명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불에 탄 성당.
사라진 제단과 장식들.
그러나 끝내 남은 그리스도의 형상.

 

어쩌면 이 성당의 아름다움은 완전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잿더미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은 신앙의 흔적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화려하게 보존된 성당도 아름답지만, 상처를 지나 다시 세워진 성당에는 다른 깊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너지지 않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무너진 뒤에도 다시 일어난 아름다움”입니다.

 

폰타 델가다 봉 제수스 성당 중앙 제대 — 화려한 바로크풍 장식과 천장화가 이어지는 성당 안쪽

마데이라 섬에서 가장 중요한 순례 축제 

폰타 델가다 성당이 특별한 이유는 지금도 살아 있는 순례의 전통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성당에서는 매년 9월 첫째 일요일에 Senhor Bom Jesus를 기리는 큰 축제가 열리며, 마데이라 여러 지역의 신자들이 이곳으로 모여든다고 합니다. 폰타 델가다 본당 소개 자료는 이 행사를 마데이라 섬에서 가장 중요한 순례 축제 중 하나로 설명합니다. 

폰타 델가다 봉 제수스 성당의 측면 제대 — 성모상 아래 유리관에 모셔진 무덤의 그리스도상
폰타 델가다 봉 제수스 성당의 측면 제대 — 성심 예수상과 아기 예수를 안은 성 안토니오상

 

 

성당 자체의 위치도 마음을 붙잡습니다. 이곳은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행자들의 후기에서도 이 성당은 해변 가까이에 있는 평화로운 성당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잘 보존된 건물과 내부의 종교적·문화적 요소, 그리고 9월 첫 주말 축제가 중요한 행사라는 점도 함께 언급됩니다. 

마데이라의 북쪽 바다는 남쪽의 밝고 부드러운 해안과 조금 다릅니다. 더 깊고, 더 거칠고, 더 묵상적입니다. 그런 바다 곁에 서 있는 흰 성당은 마치 파도와 바람 사이에 놓인 기도의 집처럼 보입니다. 성당의 아름다움은 색채의 화려함보다,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는 사실에서 옵니다.

바다는 변하고, 사람은 떠나고, 세월은 건물을 태우기도 하지만, 다시 세워진 성당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신앙은 때로 말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저 어느 장소 앞에 서면, 오래된 기도들이 마음속에서 다시 깨어납니다.

 

폰타 델가다 봉 제수스 성당의 측면 제대 — 성심 예수상과 아기 예수를 안은 성 안토니오상

 

폰타 델가다 봉 제수스 성당의 측면 제대 — JHS 문양과 금빛 장식이 돋보이는 성체 제대

 

세 가지 아름다움

이 성당의 아름다움은 그래서 세 가지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첫째, 바다 곁에 선 장소의 아름다움.
둘째, 16세기부터 이어진 오래된 신앙의 역사.
셋째, 화재의 상처를 지나서도 다시 살아남은 그리스도의 이미지와 순례의 기억.

 

폰타 델가다의 봉 제수스 성당은 크기나 화려함으로 압도하는 성당은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마데이라 북부의 바람과 바다, 이주민의 신앙, 화재를 견딘 기억, 그리고 지금도 길을 걷는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함께 머물고 있습니다.

 

폰타 델가다 봉 제수스 성당의 측면 제대 —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상과 아래쪽 성모상이 함께 모셔진 공간

 

폰타 델가다 봉 제수스 성당 내부 — 유리장 안에 모셔진 성모상

 

폰타 델가다 봉 제수스 성당의 세례대 — 오래된 돌 세례대와 아줄레주 타일이 어우러진 작은 공간

 

폰타 델가다 봉 제수스 성당 옆 묘지

 

폰타 델가다 봉 제수스 성당 뒤편 — 비 내린 흰 벽과 붉은 지붕, 그리고 종탑.

 

폰타 델가다 봉 제수스 성당 뒤편 — 북쪽 해안 절벽과 대서양이 맞닿은 풍경
폰타 델가다 봉 제수스 성당 아래 해안 — 절벽과 방파제 사이에 작은 배들이 머물던 북쪽 바다
폰타 델가다 봉 제수스 성당 아래 해안 — 안개 낀 절벽과 방파제가 이어지는 마데이라 북쪽 바다

 

 

 

 

이곳은 바다 곁에서 오래된 위로를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작은 마을의 성당이 어떻게 한 섬의 순례지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장소였습니다.

폰타 델가다 성당 앞에 서면, 마데이라의 풍경은 다시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바다는 기도의 배경이 되고, 성당은 시간의 증인이 됩니다.
그리고 여행자는 잠시 순례자가 됩니다.

 

별이 된 어머니를 향한 순례길에서
– 소공녀의 별

On a pilgrimage path towards my mother, now a star
– Little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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