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시의 성녀 클라라 대성당(Basilica of Saint Clare, Basilica di Santa Chiara)은 “프란치스코의 도시”라는 이름 뒤에 조용히 숨 쉬는 또 하나의 심장처럼 느껴졌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이 순례의 웅장한 중심이라면, 성녀 클라라 대성당은 더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오래 지속되는 결심의 언어로 다가옵니다. 아시시의 골목을 따라 걷다 성당 앞 광장에 서는 순간, 움브리아의 공기가 한 번 더 맑아지고, 마음은 자연스럽게 ‘가난과 기도’라는 단어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파사드의 색입니다. 몬테 수바시오(Mount Subasio)에서 채석한 분홍빛과 흰빛 석재가 층층이 띠처럼 이어져, 햇빛에 따라 표정이 달라집니다. 정면은 세 구역으로 나뉘어 포털(문), 장미창, 박공(삼각형 상부)이 수직으로 정렬되어 있고, 포털 위의 장미창은 두 겹의 기둥과 아치 장식이 섬세하게 겹쳐져 있습니다. 특히 장미창을 받치는 장식에 사자들이 숫양을 움켜쥔 조각이 남아 있어, 멀리서 볼 때는 단정한 성당이 가까이 갈수록 ‘상징의 세계’를 열어 보인다는 인상을 줍니다.
이 성당이 더 특별한 이유는, 단지 건축미 때문이 아닙니다. 성녀 클라라가 1255년 성인품에 오른 뒤, 그녀를 기리기 위한 대성당이 1257년부터 건립되었고(기존의 산 조르조 교회 자리와 연결), 이후 클라라의 유해가 이곳으로 옮겨져 성당의 영적 중심이 되었습니다. 한때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의 유해가 산 조르조에 잠시 안치되어 있었던 전승도 이 성당의 ‘기억의 층’을 더 깊게 만듭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외관의 리듬과 다른 ‘침묵의 밀도’가 먼저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순례자가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산 다미아노 십자가(San Damiano Cross)입니다. 프란치스코가 산 다미아노 성당에서 기도하던 중, 십자가 앞에서 “교회를 다시 세우라”는 부르심을 들었다는 전승으로 잘 알려진 그 십자가가, 현재 성녀 클라라 대성당 안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단순한 십자가가 아니라, 성화(아이콘)처럼 인물과 상징이 겹겹이 담긴 ‘그림 십자가’라는 사실이 더 선명해집니다.
저는 그 십자가 앞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프란치스코의 부르심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큰 결단”만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그 결단을 가능하게 한 ‘반복되는 기도’와 ‘한 자리의 침묵’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성녀 클라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의 삶은 화려한 사건보다, 매일의 규칙과 단순함 속에서 단단해진 선택의 연속이었으니까요. 성당의 공기는 그 단단함을 과장 없이 전합니다.
그리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성녀 클라라의 유해를 공경할 수 있는 지하 공간(크립트)로 이어집니다. 오늘날 순례자들이 만나는 크립트는 19세기 중반(1852–1872)에 조성되었고, 1935년에 네오고딕 양식으로 정비되었다고 안내됩니다. 클라라의 유해는 1850년 주제대 아래에서 발견되었고, 현재는 크립트의 단순한 석관(흰색·분홍색 수바시오 석재)에 모셔져 공경됩니다. ‘보여 주기 위한 장식’보다 ‘머물기 위한 공간’이라는 인상이 강해, 오히려 기도가 쉬워지는 자리였습니다.
성당 밖으로 나오면, 광장이 선물처럼 열립니다. 성녀 클라라 대성당 앞 광장은 아시시의 계곡 풍경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곳이라, 순례의 긴장을 잠시 풀고 숨을 고르기 좋습니다. 저는 이 지점이 참 아시시답다고 느꼈습니다. 하느님께로 향하는 길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계곡을 내려다보며 내가 서 있는 삶의 자리’를 다시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성녀 클라라는 도시를 떠나 수도원 울타리 안에 머문 사람이지만, 그녀의 기도는 아시시의 골목과 계곡을 조용히 감싸고 있었겠지요.
사진을 남긴다면, 저는 이렇게 기록해 두는 편입니다. 1) 파사드의 분홍·흰 띠가 빛에 따라 달라지는 순간을 정면에서 한 장, 2) 장미창의 섬세한 원형 리듬을 가까이에서 한 장, 3) 산 다미아노 십자가는 가능한 한 조용히(안내 규정을 존중하며) ‘전체 형태와 주변 분위기’를 담아 한 장, 4) 크립트는 사진보다 마음에 남기는 편이 더 좋았습니다. 그곳은 카메라보다 기도가 더 어울리는 공간이었습니다.
접근성 메모(사진 대체텍스트 예시)
- 파사드: “분홍빛과 흰빛 석재 띠가 교차하는 아시시 성녀 클라라 대성당 정면과 큰 장미창.”
- 십자가: “성녀 클라라 대성당 내부에 걸린 산 다미아노 그림 십자가. 중앙의 그리스도 형상과 주변 인물들이 함께 그려져 있다.”
- 크립트: “지하 크립트의 낮은 천장과 부드러운 조명 아래, 흰·분홍빛 석관에 모셔진 성녀 클라라의 유해 공경 공간.”
별이 된 어머니를 향한 순례길에서 – 소공녀의 별
#아시시 #성녀클라라대성당 #BasilicaOfSaintClare #BasilicaDiSantaChiara #성녀클라라 #산다미아노십자가 #SanDamianoCross #성프란치스코 #움브리아 #이탈리아순례 #가톨릭성지 #아시시순례 #소공녀의엄마찾아삼만리
'성지순례 삼만리 여정 > 바실리카_Basilica'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 — 새벽에 다시 오른 바티칸의 하늘. (3) | 2026.03.28 |
|---|---|
| 아시시의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대성당 (0) | 2026.02.22 |
| 벨기에 할레 성모 대성당(블랙 마돈나, Our Lady Basilica) — 연기 속에서 검게 물든 성모 (1) | 2025.12.14 |
| 보고타 몬세라테 언덕의 가톨릭 성지(Monserrate Sanctuary) (3) | 2025.11.04 |
| 브뤼셀 코켈베르흐 예수성심 대성당 — 유럽 최대급 아르데코 성전, 초록 돔 위로 보는 브뤼셀 (0) | 2025.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