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시는 “어디를 먼저 보느냐”에 따라 마음의 결이 달라지는 도시입니다. 언덕 위의 찬란함으로 시작할 수도 있고, 평지의 작은 예배당에서 조용히 시작할 수도 있지요. 저는 이번 순례를 “아시시의 핵심 성지들을 한 줄의 동선으로 묶어” 걷는 방식으로 정리해 보려 합니다. 큰 대성당과 작은 예배당, 도시 안쪽의 본당과 성벽 밖의 고요, 숲 위의 은수처와 산 아래의 시작점까지. 결국 아시시는 ‘크기’가 아니라 ‘방향’을 배워 가는 순례길이었습니다.
1장. 순례의 중심축을 잡는 법: 위에서 아래로, 다시 시작으로
아시시 핵심 성지들은 크게 세 축으로 나뉩니다.
- 언덕 위(아시시 구시가):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사크로 콘벤토, 성녀 클라라 대성당, 산 루피노 대성당
- 성벽 밖(도시 주변): 산 다미아노 성지
- 숲 위(몬테 수바시오): 카르체리 은수처
- 평지(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대성당과 포르치운콜라
이 글에서는 “구시가에서 시작해 성벽 밖과 숲 위를 거쳐, 마지막에 평지의 포르치운콜라로 내려오는 흐름”으로 정리합니다. 포르치운콜라는 매해 8월 2일 ‘아시시의 대사면(Pardon of Assisi)’ 전통으로 특히 많은 순례가 이어지는 곳이라, 순례의 끝맺음으로도 상징이 큽니다.
2장. 1번 방문지: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과 사크로 콘벤토
Basilica of Saint Francis of Assisi + Sacred Convent
아시시 순례의 중심은 단연 이곳입니다. 건물 자체가 커서가 아니라, 프란치스코의 전 생애가 ‘기도와 공동체’로 이어지는 중심축이기 때문입니다. 움브리아 관광 안내에 따르면 이 대성당은 프란치스코 선종(1226) 후 2년 뒤에 건립이 시작되었고, 1228년 7월 17일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초석을 놓았다고 전합니다. 또한 상부 성당이 1253년에 봉헌(축성)되었다는 설명도 함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순례는 “장엄함을 감상”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마음속 질문 하나를 세우는 데서 완성됩니다.
- 나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키며 살고 있는가
- 내 삶의 ‘작은 평화’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3장. 2번 방문지: 성녀 클라라 대성당
Basilica of Saint Clare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이 ‘움직임과 파견’의 상징이라면, 성녀 클라라 대성당은 ‘머묾과 결심’의 상징처럼 다가옵니다. 그리고 많은 순례자들이 여기서 특별히 멈추는 이유가 있습니다. 산 다미아노 십자가의 원본이 현재 성녀 클라라 대성당에 보존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동선상으로도 성녀 클라라 대성당은 “산 다미아노를 가기 전, 십자가의 의미를 먼저 품는 자리”가 되어 줍니다.
4장. 3번 방문지: 산 루피노 대성당
Cathedral of San Rufino
아시시 순례가 깊어지는 순간은, 의외로 가장 ‘본당’다운 자리에서 찾아옵니다. 산 루피노 대성당은 아시시의 수호성인을 기리는 대성당이자, 도시의 신앙이 일상으로 흐르던 중심입니다. 여러 순례 안내에서는 이 성당이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의 세례와 연결된 의미를 강조하며, 아시시 순례에서 중요한 정거장으로 소개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성인의 위대함”보다 “성사의 평범함”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믿음은 극적인 장면만으로 자라지 않고, 물과 이름과 공동체의 리듬 속에서 천천히 사람을 바꿉니다.
5장. 4번 방문지: 산 다미아노 성지
Santuario San Damiano
산 다미아노는 프란치스코 여정에서 “꼭 들르는 장소”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합니다. 아시시 공식 관광 안내는 이곳을 성벽 밖 올리브나무에 둘러싸인 성지로 소개하며, 프란치스코와 클라라가 각자의 결정적 순간들을 살아낸 자리라고 설명합니다. 또 산 다미아노 성당 제대 위에는 ‘프란치스코에게 말씀하신 십자가’의 복제품이 있고, 원본은 성녀 클라라 대성당에 있다는 점도 분명히 안내합니다.
산 다미아노의 매력은 ‘크게 볼 것’이 아니라 ‘오래 머물 수 있음’입니다. 방과 회랑, 기도의 자리들이 이어지며, 성지는 박물관이 아니라 생활이었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언합니다.
6장. 5번 방문지: 카르체리 은수처
Eremo delle Carceri (Hermitage of the Carceri)
카르체리는 아시시 ‘위쪽 숲’으로 올라가 만나는 고요의 성지입니다. 그리고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목적지가 아니라, 올라가는 과정 자체가 이미 순례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시시 공식 안내에 따르면 카르체리는 구시가에서 약 4km 떨어져 있고, 도보로는 Porta Cappuccini에서 시작하는 트레일 350을 따라 약 3.5km로 접근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은수처로 바로 가는 대중교통이 없다”는 안내도 함께 확인됩니다.
길이 가르쳐 주는 것은 단순합니다. 말을 줄이면, 숲이 커지고 마음이 비워집니다. 아시시의 이야기들을 머리로 채웠다면, 카르체리는 그 이야기를 가슴으로 내려오게 하는 장소였습니다.
7장. 6번 방문지: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대성당과 포르치운콜라
Basilica of Santa Maria degli Angeli (Porziuncola)
아시시 순례의 마지막은, 다시 ‘작은 시작’으로 내려갑니다.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대성당은 평지에 세워진 거대한 성당이지만, 그 거대함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내부에 포르치운콜라(작은 예배당)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순례 안내에서도 포르치운콜라가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안에 보존되어 있다는 점을 핵심으로 강조합니다.
그리고 8월 2일 ‘아시시의 대사면’ 전통은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 포르치운콜라를 찾아 “평화와 용서”를 구하도록 이끕니다.
저는 이곳에서 아시시 전체가 다시 해석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언덕 위 대성당들의 찬란함도, 성벽 밖 산 다미아노의 고요도, 숲 위 카르체리의 침묵도… 결국은 이 작은 예배당 같은 ‘처음 마음’을 지키기 위한 길이었다는 것을요.
8장. 추천 순례 동선 한 줄 정리
- 오전: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사크로 콘벤토 → 성녀 클라라 대성당 → 산 루피노 대성당
- 오후: 산 다미아노 성지(성벽 밖, 올리브나무 길) → 카르체리 은수처(숲 위, 침묵의 시간)
- 다음 날 또는 마무리: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대성당(포르치운콜라)
하루에 모두 묶을 수도 있지만, 카르체리의 숲길과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의 넓은 공간은 “서두르면 남지 않는 성지”라서, 가능하면 숨을 고를 여백을 남기는 편이 좋았습니다.
별이 된 어머니를 향한 순례길에서
– 소공녀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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